'유드음: 버클리 박사, 장중모 이어 받은 TSMC, 미중 칩 갈림길에서의 6년 결단'

'2018년 6월, 장중모가 퇴임하고 유드음과 웨이자지아가 공동으로 TSMC를 이어받았다. 버클리 전기공학 박사인 그는 엔지니어의 정밀함으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반도체 파운드리를 이끌며, 미중 기술 경쟁이 격화된 6년간 애리조나 공장 건설을 발표하고 지정학적 줄다리기를 반복했다. 2024년 6월 웨이자지아에게 경영을 넘기고 퇴임하며 마지막으로 'TSMC 주식을 사라'고 말했다.'

유드음: 버클리 박사, 장중모 이어 받은 TSMC, 미중 칩 갈림길에서의 6년 결단

30초 개요: 유드음은 1954년생으로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1991년 TSMC에 입사했다. 2018년 장중모 퇴임 후 이사회 의장에 취임했다. 그가 이끈 6년간 TSMC는 미중 기술전쟁의 핵심 말이 되었다. 애리조나 투자는 초기 120억 달러에서 1,650억 달러 이상으로 확대되었고, 유드음은 정부 관료와 언론 앞에서 TSMC의 대체 불가능성을 수차례 역설했다. 2024년 6월 그는 정식으로 퇴임하여 웨이자지아에게 경영권을 넘겼다.

버클리의 기초

유드음은 1954년생으로 대만대학교 전기공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받은 후 미국 유학을 떠나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1 박사 과정을 마친 뒤 그는 먼저 산업기술연구원(工研院) 전자소재연구소에서 근무하며 대만 초기 반도체 기술 연구개발에 참여했고, 이를 통해 산업의 흐름을 파악하는 역량을 쌓았다.

이 버클리에서의 훈련은 이후 TSMC에서 여러 차례 언급되었다. 강조된 것은 명문대 타이틀이 아니라 하나의 인식론이었다. 엔지니어가 복잡한 상황을 측정 가능한 변수로 분해하는 능력. 유드음은 이 방법으로 회로보다 더 측정하기 어려운 지정학에 맞섰다.

통설에 따르면 장중모의 후계자에게는 '장중모 제2'의 카리스마와 존재감이 필요했다. 그러나 유드음은 정반대의 답을 내놓았다. 그는 창업자의 상징 자본을 복제하려 하지 않았고, 숫자·공정 노드·투자 약속을 소통의 언어로 삼아 엔지니어의 정밀함으로 선교사적 감화를 대체했다.

이 선택은 반도체 전쟁의 시대에 정확히 먹혔다. 반도체 정치의 협상 테이블에서 이야기꾼의 서사는 아무도 사지 않았지만, 공정 노드의 숫자는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유드음의 버클리 기초는 결국 지정학의 대청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찾아주었다.

工研院에서 TSMC로

1991년, 유드음은 TSMC에 입사했다. 당시 회사 설립 겨우 4년이었다.2 그는 연구개발 부매니저에서 시작해 연구개발 부사장, COO(최고운영책임자) 등으로 승진하며 0.35마이크로미터에서 7나노미터에 이르는 여러 세대의 공정 기술 개발에 깊이 참여했다. TSMC가 첨단 공정의 성채를 쌓아 올린 핵심 시기에 유드음은 기술 결정의 중심에 선 인물이었다.

이 30년간 TSMC의 첨단 공정은 마이크로미터 시대에서 나노미터 시대로 도약했다. 유드음은 그중 가장 중요한 몇 가지 전환점에 참여했다. 파운드리가 독립된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 잡은 것에서부터, TSMC가 각 세대 공정 노드에서 인텔과 삼성을 잇따라 추월한 것까지. 기술적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이것이 그가 이후 지정학을 협상할 때 자신감의 원천이었다.

이원적 경영 체제로의 이양

2018년, 장중모가 퇴임을 선언하고 TSMC는 이원적 경영 체제를 가동했다. 유드음이 이사회 의장에, 웨이자지아가 사장에 취임했다.2 두 사람의 역할 분담은 유드음이 전체 전략과 대외 관계를, 웨이자지아가 운영 실행을 주도하는 것이었다.

이 구조는 당시 TSMC의 안정적 전환으로 해석되었지만, 곧 지정학적 고압 속에서 어떤 설계보다 복잡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2018년은 미중 무역전쟁이 전면적으로 폭발한 해였고, TSMC는 이후 6년간의 모든 핵심 결정에서 워싱턴, 베이징, 타이베이 세 방향을 동시에 설득해야 했다.

"아무도 무력으로 TSMC를 통제할 수 없다"

2022년, 미중 기술 경쟁이 백열화되면서 TSMC는 글로벌 반도체 지도의 핵심 쟁탈점이 되었다. 유드음은 CNN 인터뷰에서 중국이 무력으로 대만을 공격할 경우 TSMC의 운명에 대해 질문받았고, 이렇게 답했다. "아무도 무력으로 TSMC를 통제할 수 없다(Nobody can control TSMC by force)."3

이 발언은 그가 이끈 기간 동안 가장 많이 인용된 표현 중 하나다. 호언장담이자 동시에 경고이고, 보증이자 동시에 파괴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엔지니어는 한마디로 지정학적 선을 그었다.

📝 큐레이터 노트: 통설에 따르면 TSMC가 미국에 공장을 짓는 것은 워싱턴의 압력에 밀려난 것이다. 그러나 유드음의 논리는 다른 해석에 더 가깝다. 공장이 필요한 모든 곳에 공장을 세우는 것, 그것은 모든 곳이 잃을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대체 불가능성'은 타협이 아니라 해자다.

애리조나의 계산

2020년, TSMC는 애리조나주에 120억 달러를 투자하여 웨이퍼 파운드리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글로벌 생산 거점 전환의 일환이었다.4 이 수치는 이후 몇 년간 계속 갱신되었다. 2025년 3월 기준 TSMC의 미국 투자 계획은 1,650억 달러(약 5조 대만 달러) 이상으로 확대되었으며, 복수의 부지와 첨단 공정의 전면적 이전을 포함하고 있다.4

유드음이 마지막으로 애리조나 계획을 공개적으로 설명했을 때, 그의 틀은 이러했다. TSMC가 던져야 할 질문은 '미국에 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조건으로 미국에 갈 것인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집행 면은 전략 면처럼 깔끔하지 않았다. 2023년, 애리조나 공장의 원래 양산 일정이 2025년으로 연기되었다. 유드음은 공개적으로 미국 내 자격을 갖춘 장비 설치 기술인력이 심각하게 부족하다고 인정했고, TSMC는 어쩔 수 없이 대만에서 인력을 파견하여 미국에서 교육을 진행해야 했다. 이 조치는 애리조나주 건설 노동조합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며, 노동자 대표들은 미국 의회에 TSMC의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 유입을 막아달라고 요구했다. TSMC 재무제표에서 달러로 계산되는 전략적 결정이 피닉스 현장에서는 '누구의 기술인가'에 대한 현실적 충돌로 변했다.4

퇴임 전 주주총회에서 화웨이의 경쟁력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화웨이는 TSMC를 추월하기 어려울 것이다."5 깔끔하고, 정밀하고, 흠잡을 데 없는 엔지니어식 답변이었다.

"TSMC는 지정학의 도화선이 아니다"

2023년 6월 주주총회에서 누군가 유드음에게 TSMC의 미중 경쟁에서의 역할을 어떻게 보는지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중국과 미국의 많은 충돌에서, 양쪽 모두 TSMC 없이는 안 되기를 바라며, 그래서 양쪽 모두 상당히, 더 많이 고려할 것이다. 그러므로 대만 반도체 산업이 잘하기만 한다면, 세계 지정학적 충돌에 안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 바란다."6

그는 이어 설명했다. "TSMC는 지정학의 도화선이 아니지만, 많은 나라가 반도체 공급이 없으면 큰 재앙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논리의 밑바닥에는 '희소성'에 대한 엔지니어의 정밀한 판단이 있다. 모두가 포기할 수 없는 노드가 되는 것, 그 자체가 가장 견고한 해자다.

2024년 5월, 퇴임 전 마지막 공개 인터뷰에서 그는 TSMC가 이제 더 이상 '대만의 TSMC'가 아니라 '세계의 TSMC'라고 말하며, "우리는 전 세계가 TSMC 제품을 '거부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중국 대륙을 포함해서."라고 밝혔다.7

6년, 엔지니어가 남긴 것

2024년 유드음이 퇴임할 때, TSMC의 시가총액은 대만 GDP를 넘어서 세계에서 가장 전략적 가치를 지닌 제조 기업 중 하나가 되었다. 그가 이어받은 TSMC는 반도체 업계의 기술 챔피언이었고, 그가 넘긴 TSMC는 지정학 바둑판에서 가장 비싼 돌이었다.

6년의 궤적은 몇 가지 앵커로 요약할 수 있다. 애리조나 투자가 120억 달러에서 1,650억 달러로 확대되었고, 첨단 공정이 7나노미터에서 3나노미터, 2나노미터 구축을 완료했으며, 고객 구도가 애플·퀄컴에서 인텔로 확장되었다. 모든 숫자 뒤에는 정부 관료, 언론, 주주 앞에서 엔지니어의 언어로 지정학을 설명했던 그의 모습이 있었다.

그는 가장 카리스마 있는 CEO도,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CEO도 아니었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6년 동안 그는 TSMC의 해자를 더욱 깊게 팠다. 아마 이것이야말로 엔지니어의 본색일 것이다.

한 사람이 6년 동안 "아무도 무력으로 TSMC를 통제할 수 없다"는 말을 할 수 있고, 퇴임 시점에 가볍게 "TSMC 주식을 사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두 문장은 모순이 아니라 같은 엔지니어 논리가 다른 상황에서 다르게 출력된 것이다.

"TSMC 주식을 사라": 2024년 6월의 이양

2024년 6월, 유드음은 공식적으로 TSMC 이사회 의장직에서 퇴임하고 웨이자지아에게 단독 경영을 넘겼다.8 TSMC의 이원적 경영 시대가 막을 내렸다.

퇴임하는 날, 누군가 할 말이 있느냐고 물었고, 그는 웃으며 말했다. "TSMC 주식을 사라."9 TSMC 주가는 그날 839대만 달러에 마감했으며, 그 자신이 보유한 TSMC 지분은 한 장도 팔지 않아 자산 가치가 100억 대만 달러를 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2025년, 유드음은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이사회 이사로 취임하며 퇴임 후 첫 국제 기업 이사직을 맡았고, 마이크론 주식 2억 4,600만 대만 달러 이상 대량 매입했다.10

통설에 따르면 TSMC의 가장 중요한 시기는 장중모가 기반을 다진 시절이다. 그러나 다른 해석도 있다. TSMC가 정말로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시험한 것은 바로 유드음이 이끈 6년이었다. 지정학과 반도체 공급망 재편이 충돌한 6년, 시나리오도 선례도 없는 시기였다.

엔지니어, CEO, 반도체 외교관, 그리고 포스트 TSMC 관찰자. 2022년 그는 아무도 무력으로 TSMC를 통제할 수 없다고 말했고, 2024년 그는 TSMC 주식을 사라고 말했다. 이 두 문장 사이의 거리가 그의 6년 임기 전부다.

더 읽기: TSMC 공식 경영진 소개웨이자지아 — TSMC 현 이사회 의장

참고 자료

  1. 위키백과: 유드음 — 유드음 생애 항목. 1954년 출생 및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 전기공학 박사 학위 확인. 본문 핵심 사실의 1차 검증 출처.
  2. 위키백과: 유드음 — 1991년 TSMC 입사, 역임 직책 및 2018년 웨이자지아와 공동 이원적 경영 체제 이양에 관한 상세 기록 포함.
  3. HK01: TSMC 이사회 의장 이양, 유드음 퇴임 전 호언장담——화웨이는 TSMC 추월 어려울 것(2024) — 유드음의 2022년 CNN 인터뷰 "Nobody can control TSMC by force" 인용문 및 퇴임 전 다수의 공개 발언 포함.
  4. 과학기술정책연구센터: TSMC 애리조나 투자 1,650억 달러로 확대(2025-03) — TSMC 미국 투자 계획이 120억 달러에서 1,650억 달러로 단계적으로 확대된 경위 기록 및 정책 배경 분석 포함.
  5. HK01: 상기 동일 기사 — 유드음의 퇴임 전 화웨이 경쟁력에 대한 공개 논평.
  6. 신당대만아시아태평양: 유드음 2023년 주주총회 "대만 반도체의 안정 역할" — 2023년 6월 주주총회 유드음의 전체 답변. "미중 충돌 모두 TSMC 없이는 안 된다" 및 "지정학적 안정 역할" 등 인용문 포함.
  7. 금주간: 6년 지정학 위기 견뎌낸 유드음 직접 고백(2024-05) — 유드음 퇴임 전 금주간 단독 인터뷰. "세계의 TSMC" 및 "전 세계를 거부 불가능하게" 등 주요 발언 포함.
  8. 중앙통신사: 유드음 퇴임, 웨이자지아 TSMC 이사회 의장 취임(2024) — 2024년 6월 TSMC 이사회 의장 공식 이양 보도. 유드음 정식 퇴임일 및 웨이자지아 이양 확인.
  9. Yahoo 코모 증권: 유드음 이별 명언 "TSMC 주식을 사라"(2024) — 유드음의 2024년 주주총회 "TSMC 주식을 사라" 퇴임 명언에 대한 사후 분석. 지분 및 주가 정보 포함.
  10. 자유평론망: 유드음 퇴임 후 재출발, 마이크론 이사 취임의 의미(2025) — 유드음 2025년 마이크론 테크놀로지(Micron Technology) 이사회 이사 취임. TSMC 퇴임 후 첫 국제 기업 이사직.
이 기사에 대해 이 기사는 커뮤니티와 AI의 협력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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