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이진
30초 요약: 1976년생인 두이진은 1995년 대만대학교 남자 기숙사에서 486 컴퓨터 하나로 PTT를 만들었다. 순수 텍스트 기반의 이 포럼은 닷컴 버블, 페이스북의 부상, 댓글 부대의 침입을 모두 견뎌내며 30년이 지난 지금도 대만 공론장의 핵심으로 남아 있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NIH에서 유전자 연구를 하고,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코타나 크로스플랫폼 AI 어시스턴트를 출시했다. 2017년 3월, 시애틀의 고액 연봉을 뒤로하고 귀국해 아시아 최초의 비영리 AI 연구기관을 창설했다. 대만판 마크 저커버그가 되지 않고, 더 기묘한 일—최첨단 기술을 돈 안 되는 곳에 쓰는 것—을 선택한 사람의 이야기다.
1995년 9월 14일 자정 무렵, 대만대학교 남자 기숙사 8관. 한 2학년 학생이 용산 전자상가에서 자작한 486 구형 컴퓨터를 인터넷에 연결하고, 리눅스 명령어를 실행한 뒤, 마우스 ID인 'Ptt'를 사이트 이름으로 설정했다. 늘 밤을 지새워 룸메이트들이 '판다(貓熊眼)'라 불렀고, 거기에 성씨 '투(杜)'의 머리글자 'T'를 두 개 붙여 PTT라 지었다. 그 편이 발음하기 좋았다.
기자도 없었다. 발표회도 없었다. 투자자도 없었다. PTT는 그렇게 시작됐다.
언론의 자유는 나중에 추가된 게 아니라 처음부터 설계에 담겨 있었다
두이진은 PTT를 만들기 전, 이미 대만대학교 BBS 공식 게시판 '야자림풍정(椰林風情)'의 관리자였다. 문제는 학교 당국의 통제가 너무 심했다는 것이다. 한 학생이 게시판에서 가명으로 하룻밤 상대를 구했다는 이유만으로 학교는 가명 기능 자체를 없애버렸다. 두이진은 이 논리에 동의할 수 없었다. 동료들과 함께 새로운 판을 차렸고, PTT를 학교 공식 관리 체계 밖에 독립적으로 두었다.
"PTT에는 언론의 자유와 발언권의 평등이 있다. 알고리즘으로 광고를 밀어붙이지 않는다. 이런 방식으로 25년이나 버텼다는 건 그 자체로 성공이다. 전 세계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그는 2020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PTT의 추천·비추천 시스템, 이용자 투표로 선출하는 게시판 운영자 제도, 비상업적 재무 구조—이 모든 설계가 창설 초기에 시스템의 유전자로 새겨졌다. 이 선택이 PTT를 모든 상업적 소셜 플랫폼과 전혀 다른 길로 이끌었다.
포럼 하나가 결정적 순간마다 등장했다
최대 동시 접속자 수가 15만 명을 넘던 시절, 이 숫자만으로는 PTT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하지만 몇 가지 날짜가 그 의미를 설명해줄 것이다.
- 2013년 홍중추 사건: 육군 하사가 가혹 행위로 사망한 소식이 PTT에서 퍼져 나갔다. 누리꾼들이 자발적으로 시민단체 '시민1985 행동연맹'을 결성했고, 대만 전역에서 25만 명이 거리에 나섰다. 1990년대 이후 최대 규모의 자발적 시민 집회였다.
- 2014년 해바라기 학생운동: 서비스무역협정의 밀실 처리에 반대한 학생들이 입법원을 점거했을 때, PTT는 동원 지휘 본부이자 외부가 여론 흐름을 파악하는 온도계 역할을 했다.
- 2020년 초 코로나19 발발: 중국 의사 리원량이 웨이보에 올린 경보가 PTT로 옮겨졌고, 질병관리청이 1월 하순에 이미 상황을 파악해 대부분의 정부보다 먼저 대응할 수 있었다.
세 사건을 함께 보면, PTT는 단순한 잡담 공간이 아니라 대만 시민 사회에서 독특한 기능을 하는 기반 시설임을 알 수 있다.
📝 PTT의 반상업적 구조
PTT는 광고를 팔지 않고, 상장하지 않으며, 기업 인수를 받지 않는다. 서버 운영은 대만대학교 학술 네트워크 대역폭에 의존하며, 학생 자치 조직 '대만대학교 전자게시판 시스템 연구회'가 관리한다. 자원봉사 변호사들이 법률 자문을 맡는다. 이 구조 덕에 상업적 수익화 압박도, 광고 알고리즘의 개입도 없다. 반면 항상 자원이 부족하다.
미국으로, 그리고 다시 돌아오다
2003년, 두이진은 '발로 투표'해 대만을 떠났다.
이유는 직설적이었다. 당시 대만은 소프트웨어 산업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일찍부터 즉석 메시지를 크로스디바이스 서비스로 만들고 싶었지만, 통신사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초기 디지털 화폐인 'P코인'을 만들었다가는 금융 법규 위반으로 제지당했다. "국내에서도 일찍이 디지털 경제를 하려는 이들이 있었지만 다 짓눌렸다. 산업계도 무시했다. 그 시절엔 온라인 채팅이 철없는 짓 취급을 받았다." 오래 억눌렸던 실망이 담긴 말투였다.
나중에 한 중국 소기업이 판수 포털과 협력해 그가 구상하던 것과 흡사한 즉석 메시지 소프트웨어를 내놨다. 그 기업이 텐센트였고, 그 소프트웨어가 QQ였다.
미국에 도착한 두이진은 먼저 미국 국립보건원(NIH) 인간 유전체 연구소에서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과 암 자동 탐지 연구에 참여했다. 2006년 마이크로소프트로 옮겨 스토리지 기술을 시작으로 나중에는 선향양(沈向洋) 박사가 이끄는 검색엔진 빙(Bing) 개발팀에 합류했다.
2012년, AI 부문으로 이동해 수석 개발 매니저(Principal Development Manager)로 코타나(Cortana)를 담당했다. 2015년 그가 이끈 코타나 팀은 세계 최초의 크로스플랫폼 AI 음성 어시스턴트를 출시했다. 윈도우에만 얹히는 게 아니라 안드로이드와 iOS까지 지원하는 것이었다. 2016년 마이크로소프트가 6,000명 규모의 AI 전담 조직(AI.R.)을 출범시켰을 때, 그는 코타나 크로스플랫폼 연구개발과 마이크로소프트 AI 아태 지역 전략 협력을 맡았다.
📝 코타나의 의미: 2016년 음성 AI 어시스턴트 전쟁
2016년은 음성 AI 어시스턴트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해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크로스플랫폼 코타나를, 구글은 I/O 개발자 대회에서 알로(Allo)를, 페이스북은 메신저 봇을 발표했다. 세 제품이 같은 해에 나온 것은, 세 기업이 AI 어시스턴트가 다음 운영체제가 될 것인지를 두고 베팅했기 때문이다. 두이진은 마이크로소프트 편에서 수십 명의 엔지니어와 함께 세계 최대 기업들과 같은 미래를 놓고 경쟁했다.
2017년 3월: 시애틀을 버리고, 귀국해 비영리 AI를 만들다
어머니는 2013년 패혈증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는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어머니의 손이 따뜻함에서 부어오름으로, 그리고 차가움으로 바뀌는 것을 느끼며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심장이 멈추기 직전, 머리를 어루만지며 '이진이가 보러 왔어요'라고 불렀다." 4년 뒤, 그는 공식적으로 귀국했다.
2017년 3월, 두이진은 대만 인공지능 실험실(Taiwan AI Labs)을 창설했다. 비정부, 비영리 성격으로, 아시아 최초의 개방형 AI 연구기관이기도 하다. 출발점은 이런 인식이었다. 대만에는 세계에서 가장 완전한 건강보험 데이터베이스가 있고, 세계 수준의 컴퓨터 과학 인재도 있다. 하지만 시장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AI 담론에서 항상 변방에 머물렀다.
"대만에는 국제적 수준의 교수와 최고의 소프트웨어 인재가 있다. 대만 AI 실험실을 결집해 대만 선도 기업들과 실질적인 AI 실험을 진행할 계획이다." 창설 선언에서 그는 평소 매체에서 보이는 낮은 자세보다 훨씬 강하게 말했다.
대만 AI Labs의 연구 방향은 크게 몇 가지다.
의료 영상: 각 의과대학병원과 협력해 비식별화된 건강보험 데이터로 AI 모델을 훈련한다. 폐 X선 이상 탐지, 뇌종양 자동 윤곽 추출 등에 활용 가능한 TaimedImg 의료 영상 보조 플랫폼을 개발해 의원과 병원에 제공한다.
인간-기계 상호작용: 대만 발음(대만어, 하카어, 대만식 중국어 포함) 특화 음성 인식 도구 '아팅(雅婷) 받아쓰기'를 개발했다. 언론사 기자의 속기, 청각장애인 보조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2021년에는 대형 언어 모델 기반의 FedGPT를 출시해, 기업이 데이터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면서 맞춤형 지식 베이스를 구축할 수 있게 했다.
인포데믹 대응: Infodemic 프로젝트를 통해 AI로 소셜 미디어의 비정상적 공조 행동을 분석하고, 댓글 부대 계정 그룹의 서사 전략과 가짜 뉴스 전파 경로를 추적한다.
코로나19: 앱 하나, 프라이버시 논쟁 하나
2021년 대만 AI Labs는 정부가 '대만 사회적 거리두기 앱'을 개발하는 데 협력했다. 블루투스 기술로 접촉을 감지하되, 개인 신원 정보는 수집하지 않고 위치 정보도 서버에 업로드하지 않는 방식이었다. 중앙 데이터베이스 구축 없이 접촉자 추적을 구현한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 중 하나였다.
이 설계는 두이진의 오랜 입장을 반영한다. 기술은 공공을 위해 기능해야 하며, 공중 보건을 명목으로 감시 역량을 확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 비판자들도 주목했다. 이 메커니즘의 효과는 설치율에 달려 있어서, 내려받는 사람이 너무 적으면 추적 효과가 제한되고, 정부가 강제하면 자발성 문제가 생긴다.
📝 오픈소스 AI의 정치적 선택
대형 언어 모델(LLM) 경쟁에서 대만 AI Labs는 상업적 라이선스 대신 오픈소스 번체 중국어 모델을 밀었다. 그 배경에는 명확한 논리가 있다. 대만의 AI 시스템이 전부 OpenAI나 구글 모델에 의존한다면, 대만은 AI의 맥락과 가치관 설정에서 발언권을 잃는다. 대만의 시각을 담고 번체 중국어 데이터로 훈련된 오픈소스 모델만이 대만이 변방화되지 않도록 보장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다만 오픈소스 모델의 상업적 경쟁력이 지속적인 연구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느냐는 반론도 있다.
비판의 목소리
두이진의 공적 이미지가 논란 없이 매끄럽지만은 않다. 이 논란들은 짚어볼 가치가 있다.
정치적 입장 의혹: 2021년 친여권 성향의 작가 린웨이펑이 PTT에서 가짜 계정으로 활동한 사실이 들통났다. 일부 평론가들은 이것이 PTT 운영진과 집권당 관계를 시사한다고 봤다. 셰한빙은 중톈뉴스에서 두이진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 수직 계열화 사업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두이진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지만, 2022년 스린 지방법원은 셰의 발언이 "주요 사실에서 현저히 벗어나지 않는다"고 판단해 패소했다.
정부 입찰 의존: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1년 사이에 두이진이 새로 설립한 8개 기업 중 5개가 22건의 정부 입찰을 수주해 총 약 1억 9,812만 신대만달러를 받았다. 비정부·비영리를 표방하는 기관의 창설자로서, 이 숫자는 '독립성'에 대한 의구심을 낳았다.
댓글 부대 발언: 2021년 7월 연합보 인터뷰에서 두이진은 "댓글 부대는 원래부터 악이 아니다. 온라인에서 같은 이념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도 댓글 부대라 불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합법적 수단으로 목적을 달성하느냐이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광범위한 논란을 불렀다. 인지전과 가짜 뉴스를 연구하는 기관의 창설자가 이런 방식으로 댓글 부대를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었다.
디지털 중개 서비스법: 2022년 8월, 두이진은 NCC가 추진했지만 조항이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비판을 받던 '디지털 중개 서비스법'을 공개적으로 옹호했다. PTT 누리꾼들의 강한 반발이 쏟아졌다. PTT 창시자가 '언론 규제' 편에 섰다는 이 장면은, 어쩌면 그의 30년에 대한 가장 복잡한 주석일 것이다.
그는 성공에 관심 없다고 했다
2020년 미러미디어 인터뷰에서 기자가 물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코타나 AI팀 아태 지역 연구개발 총감독까지 올랐고, 결혼해 두 딸도 있는데, 대만으로 돌아와 AI 산업에 뛰어든 건 앞으로 나아간 건가요, 뒤로 물러선 건가요?"
'성공'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그는 항의했다. "성공이 뭔데요? 성공은 그냥 하나의 정의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는 30년간의 모든 선택을 설명하는 듯한 말을 했다. "PTT는 처음부터 페이스북이 되거나 광고를 팔려 한 적이 없다. 일반적으로 성공이라 하면 시가총액과 상장을 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두이진의 이야기에서 하나의 주선을 찾는다면, 아마 이런 것일 것이다. 그는 어떤 자리에서 정점에 오를 때마다, 더 불확실한 무언가를 하기로 결정했다. PTT가 그랬고, 대만을 떠날 때가 그랬으며, 귀국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논란은 그의 이미지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더 실재하는 것으로 만들었다. 30년간 PTT를 상품화하지 않은 사람과, 2억 원에 가까운 정부 입찰을 수주한 창업자가 동일 인물이다. 공론장의 수호자와 디지털 법규의 옹호자도 같은 사람이다.
모순은 그의 약점이 아닐 것이다. 모순이야말로 그의 전모일 것이다.
참고 자료
- 미러미디어 — 성공이 아닌 자유를 원한 두이진 (2020)
- 위키피디아 — 두이진
- 위키피디아 — PTT 실업방
- Taiwan AI Labs 공식 웹사이트
- Taiwan AI Labs — Healthcare
- Taiwan AI Labs — Human Inter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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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주제: 탕평(唐鳳), 해바라기 학생운동, 대만 인터넷 역사, 반도체 산업